믿음과 양심을 지키는 복음의 사람, 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는 믿음의 참 아들인 디모데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입니다. 18절, 19절에 보면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서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라" 그랬습니다.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이라는 것은 바울이 늘 말씀한 그 말씀을 의미하지요. 그 증거한 그 말씀을 따라서 그 말씀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라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이 말 속에 영어 표현은 'holding on'이라는 단어를 쓰기 때문에, 착한 양심을 가지라보다는 믿음과 양심을 지키는, 끝까지 붙잡는 거죠. 예, 믿음과 양심을 끝까지 붙잡는 그 복음의 사람이 귀한 겁니다.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 결국 파선했다,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가장 귀한 것을 놓치면 인생 다 놓치는 거지요. 그래서 믿음과 양심을 지키는 복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첫째로 이 세상의 거짓 교훈을 멀리해야 된다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거짓 교훈에 대해서 아주 경고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둔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가 뭐냐면 거짓 교사들, 저 유대인들 중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인데 그전에 그 율법 이것이 너무 굳다 보니까 자꾸 복음을 변질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거짓 교사다 그랬습니다. 자꾸 다른 교훈을 가르칩니다.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매여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족보 전통 엄청 따지잖아요. 복음을 받아도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된다, 이게 바른말 같은데 틀린 거예요.
이러한 가르침은 믿음에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논쟁만 일으킵니다. 우리의 믿음에 힘을 주는 것은 복음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지키는 거고 국가 국민으로서 당연히 지키는 거지, 율법을 계속 강조한다는 것은 율법을 안 지키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의미지요. 당시 사람들은 끝없는 족보 이야기, 지식 자랑, 논쟁에 빠졌습니다. 요즘도 좀 비슷합니다. 기독교를 인간 철학으로 만들려고 자꾸 감성을 추가하는 가르침도 있고 왜곡된 복음이 있습니다. 성공 신앙, 기복 신앙, 자기 중심적 복음. 복음 복음 하면서 결국 복음의 본질보다는 자기 어떤 유익을 위한 수단으로 쓰지요.
복음의 참된 목적, 이 참된 교훈의 목적은 뭐냐 하니까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다. 믿음 그 속으로 들어가 보는데 '저 사람 참 믿음이 좋아요', 그런데 믿음 그 속에 들어가 보니까 사랑이에요. 그게 진짜 믿음이지요. 참 복음의 사람인데 들어가 보니까 전혀 사랑이 없어요. 그건 복음 안 받은 겁니다. 복음을 이 말씀으로 들은 사람의 깊이에 들어가 보면 사랑이라는 거기에서 다 드러나 버려요. 그래서 복음의 진리는 우리를 사랑의 사람으로 세워간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에 집중하지 않는 성경 공부 다 쓸데없고 해롭다, 결국 유익을 못 준다 그렇게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헛된 말에 빠져서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지만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전혀 깨닫지도 못한다. 헛소리 자꾸 하는 거예요. 맞닿은 말 같은데도 자꾸 이상한 말을 합니다.
첫째가 세상의 거짓 교훈을 멀리하라, 두 번째가 뭡니까?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그 이유를 잘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는가? 오늘 본문에 보면 율법의 바른 용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율법을 주셨는가 그 이유를 우리가 이해해야 되는데, 율법은 선한 것이지만 불법한 자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참 선한 건데 불법한 자들을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는 거예요. 인간은 죄인이잖아요. 죄인들이 이 율법이 필요한 거예요.
율법은 의인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고 죄인을 깨우치기 위해서 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회개할 때까지는 율법이 필요해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 진짜 회개하고 나고 복음 받으면, 이제 복음으로 사는 인생인데 사실은 율법이 필요 없어요. 율법 폐기가 아니라 율법은 당연히 지키는 거죠, 상식이잖아요. 율법보다 더 어마어마한 힘이 있는 게 뭐냐니까 복음으로 사랑의 힘이에요. 그 사랑으로 사람을 움직이고, 믿음으로 사람을 움직이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사랑으로 사람을 움직이고, 이것이 복음의 본질입니다.
율법은 남을 정죄하는 도구로 쓰기보다는 나를 돌보는 거울로 사용하면 유익되지요. 죄짓는 사람 보면서 판단하기보다는 '아, 나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저렇게 빠질 수밖에 없네.' 이 율법을 돌아보면서 '나는 당연히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인데 나에게 이런 복음 주셔서 이 성령의 은혜를 이렇게 풍성하게 받게 하셨구나. 참 너무 감사하다. 나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은혜가 나는 더 필요하다' 이런 고백을 합니다.
율법을 다 펼쳐놓고 보면 다 옳은 말씀이잖아요. 우리를 다 선한 길로 인도하잖아요. 그런데 과연 내가 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느냐 따져 보면 못 지키거든요.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고 믿음이 필요하구나. 이 믿음이 훨씬 힘이 있습니다. 율법으로 지키고 안 지키고 이래야 저래야지 그런 것도 양심에 힘이 있지만, 바로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나를 위해서 죽으신 참선지자 길을 여셨고, 참제사장 모든 죄 문제를 저주를 해결하셨고, 참된 왕 흑암의 사단을 꺾으신 왕. 예수가 그리스도, 이 믿음으로 들어가는 게 훨씬 능력이고 힘이 되는 거죠.
성경에 보니까 죄 목록이 나오는데 죄 목록을 여기서 다 열거할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다 아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 열거한 그 당시를 보면, 노예가 그 당시 합법으로 되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주인들이 노예를 부리는데 인격을 무시하고 자기가 갑이라는 위치에서 을로 할 때가 너무 많은 거예요. 이런 게 하나님의 자녀가 노예가 정당하다는 그런 핑계로 얼마나 부리고 이용하고 악용하는지 이런 목록이거든요.
그런데 진짜 믿음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떻게 대합니까? 사랑으로 한 인격을 대하고 역지사지로 생각하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도와주는 게 얼마나 힘이 있습니까? 그래서 당시의 권력 관계를 이용한 착취, 미숙련 소년을 대상으로 한 행위, 노예나 약자를 대상으로 한 지배를 막 행동하는데 그래서 율법을 주신 거예요. 이 율법보다 뛰어난 게 뭐냐니까 바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나를 구원하셨다'. 믿음과 사랑으로 사람을 보면 훨씬 더 힘 있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양심과 믿음과 양심을 지키는 이 복음의 사람이 되라. 이게 많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 거죠. 그래서 디모데에게 너는 일반적으로 율법에 매이는 그런 사람 되지 말고, 내가 너에게 전한 이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은혜 속에 든든히 서서 이 사랑으로 가르치고 도와주라. 그러면 성령께서 도와주시고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이끄는 너는 서밋이 될 거야, 믿음의 사람이 될 거니까 그렇게 하라 이렇게 말씀을 했는데 디모데는 참 이것을 가슴에 다 품고 있었어요. 하나님 말씀 다 품고 에베소 교회도 섬기고 교회를 섬길 때에 교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그때 해결되는 거예요. 이게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역사 아닙마까?
이 모든 것은 복된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에 유익합니다, 믿음은. 그러나 율법으로 나가면 복음을 거스르게 되는 거죠. 그래 주의할 게 뭐냐니까 항상 옳은 말을 주의해야 돼요. 저도 보니까 옳은 말 하면서 사람들을 괴롭힌다니까요. 틀린 말 하면 막 틀렸다 맞붙겠는데, 옳은 말 하고 복음 말 하면서 그 내용은 사랑이 없어요. 그 사람 죽이는 겁니다, 그게 몇 번 죽이는 거야. 이런 올무에 안 걸리려면 믿음과 양심을 지키는 이 복음의 사람이 돼야 돼요. 복음 속에 다 들어가 보면 믿음이에요. 그런데 더 들어가 보면 사랑이에요. 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는데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베풀 때에 모든 엉킨 게 싹 풀려버린 거죠. 나 중심으로 하면 아무리 옳아도 그거는 흑암에 잡혀버려요. 그런데 위로부터 받은 그 은혜, '내가 누구냐? 이런 죄인을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해 주셨네.' 그 사랑으로 충만하면 이 사랑이 상대방을 확 변화시키는 거죠.
그다음에 믿음과 양심을 지키는 복음의 사람은 감사가 나온다는 바울의 그 간증과 감사가 12절에 나오는데, 바울 그는 항상 은혜를 기억하면서 복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에는 하나님을 모독하고 그렇게 핍박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거예요. 좋은 것도 있지만 내가 실수한 것도 함부로 잊어버리면 안 돼요. 왜냐, 또 반복하니까. 다 잊지 않고 '내가 어떤 존재에서 어떤 놈인데 이렇게 구원받았나?' 그러면서 하나님을 그렇게 모독했고 핍박했던 장본인 내가 긍휼을 입어 이렇게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 주님이 나를 부르실 때는 아무 조건 없이 그냥 부활하신 주님이 세운 거야. 그래서 나는 부름받았고 구원받았고 주의 종이 되었어요. 그렇다면 내 인생도 아무 조건 없이 은혜를 베풀고 사랑을 베풀어야 하지 않나 이거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고 자신의 그 죄인 중에 괴수, 죄인 중에 두목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오래 참으셨는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 이런 부분을 참 영적으로 느꼈다는 거예요, 깨달았다는 거죠. 이게 은혜이지요. 보통 사람은 이런 걸 못 깨닫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 지식을 붙든 것이 아니고 은혜와 긍휼을 붙잡았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넘쳤다라고 표현하잖아요. 14절에 "주님의 은혜가 넘쳤도다." 넘쳤다는 것은 이게 풍성이 더 지나쳐 가지고 막 넘쳐 흘러요. 우리는 보통 모자라잖아요. 인생이 모자라는 그런 거 하는데 바울은 풍성했다 그래요, 주님의 은혜가.
믿음의 길은 지식으로 끝나지 않고 은혜에 머무는 겁니다. 은혜에 머무는 게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자리에 내가 설 수 없구나' 이것을 깨닫는 거죠. 은혜 아니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까? 은혜 아니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까 한번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신앙의 기준은 내가 얼마나 아는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얼마나 감사하는가 이게 중요한 거죠. 내가 얼마나 훈련받고, 내가 얼마나 성경을 많이 읽고, 내가 얼마나 깨닫고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가. 그 감사가 그 사람의 본질이고 그의 무게고 그의 그릇입니다. 바울처럼 풍성한 감사를 한다, 그건 풍성한 사람이에요. 풍성한 축복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감사가 너무 빈약하다, 그러면 그릇이 작은 거예요. 이거 확 깨야 돼요.
이거 깨려면 다른 방법이 아니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그 믿음으로 들어가고 고백해야 됩니다. "주여 나는 쪽박 그릇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내 수준 이거 말이 안 됩니다. 주여 이거 깨뜨려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푹 들어가게 도와주시고 성령으로 도와달라"고 막 기도하면 수준 달라져요, 이상하게도. 그래서 모든 치유의 시작은 인정입니다. 믿음으로 인정하고 시인하고 때로는 고백할 것은 고백하고. 바울은 말하기를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나는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내가 생각해 볼 때는 보통 불신자는 다 이렇게 하잖아요. 유대인들은 다 이렇게 했거든요.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 자체가 뭐냐니까 일반적으로 깨닫는 죄인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밝은 빛 앞에 복음 앞에 자신을 다 보니까 누구 생각할 것 없이 자신이 너무 죄인인 것을 고백한 거예요.
그게 의인의 특징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한 번으로 끝나면 되는데, 날마다 "나는 죄인입니다" 그런 사람이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잖아요. 은혜가 있으니까 죄인임을 깨닫는 거죠. 이렇게 날마다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십자가 속에서 출발하고 또 출발하는 자에게 날마다 어떤 응답 주십니까? 성령으로 부활의 새로운 소성이 되는 축복, 또 소생하고 또 소생하는 게 다른 도를 닦아 되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율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복음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복음 속에 많은 사람들은 메시지 많이 들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훈련이 아니에요. 십자가 속에 들어가는 겁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왜 그분은 십자가를 지셨을까? 이 부분에 답을 얻어요. 주님이 왜 그렇게 살 찢기고 피 흘리고 그런 과정을 겪어야 했을까?
"죄를 지으면 죽으리라" 하는 이 하나님의 엄위한 공의 앞에 얼마나 엄청난 죄인이면 주님이 죽으셔야 했을까? 그것은 바로 나를 위한 죽음이구나. 이런 부분을 깨달으면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그 의미를 알게 되고 성령님의 끝없는 그 포근한 사랑에 푹 젖으면서 이렇게 새로운 마음이 생기는 거죠. 그러면 부활의 은혜가 날마다 임하게 되는, 이거는 비밀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음과 양심을 지키는 복음의 사람은 디모데에게 명령한 것처럼 이 명령을 지켜요. 무슨 명령이냐?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믿음과 착한 양심을 굳게 붙들라." 아까 'holding on'이라고 그랬잖아요. 지키라는 성경의 영어 표현에서는 굳게 붙잡으라, 확 잡아야 되는 겁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 이것은 해도 되고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살길이 믿음과 착한 양심을 굳게 붙잡고 서는 거예요. 이렇게 명령입니다, 너무 중요하니까.
바울은 디모데가 받은 그 예언에 따라서 믿음과 선한 양심을 지키며 싸우라. 그때부터 이 싸우는 거예요. 청결한 양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싸우는 겁니다. 불의와 싸우고 흑암과 싸우고 자신과 싸우고. 적 중에 가장 친숙하며 끈질긴 적이 뭐냐니까 내 자신이에요. 적 중에 다른 적은 하나도 무섭지 않아. 그런데 이 나라고 하는 이 자아가 사단이 얼마나 나를, 자존심을 쥐고 있는지 그 자존심으로 다 묶어버려. 그러니까 이거는 내 힘으로 안 되는 거예요. 십자가 앞에 가지 않으면,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지 않으면 절대로 사단은 놓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주님께 확 드려야 되는 거예요.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그럴 때 그 십자가 앞에 눈물이 팍 쏟아지면서 흑암이 확 떠나버리잖아요. 흑암이 확 떠나버리면 완전 정상이 되는데, 그때는 모든 엉킨 것이 없어지고 다 열려버려요. 그때 깨닫는 거, "주님, 환경 때문이고 사람 때문이고 뭐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 때문이네요. 나는 죄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출발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기적이 부어집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믿음을 왜 잃어버립니까? 양심을 버리기 때문에 그래요. 믿음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양심을 버리는 거예요. 양심을 무너뜨리는 작은 죄가 작은 게 아니에요. 양심을 무너뜨리는 작은 죄는 결국 믿음의 배를 파선시키는 암초가 됩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바로 그랬다니까요.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복음을 받을 때는 참 기적인데 쉽게 버려버린 거예요. 그런데 이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지도자로 있었거든요, 교회 지도자. 남을 가르쳤지만 그러나 자기 자신은 이미 양심을 잃고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지도자 가운데 이런 사람 참 많습니다. 자기는 전혀 내적으로 양심도 믿음도 다 잃어버려 놓고 입만 가지고 가르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말 잘하는 사람은 진짜 위험합니다.
그들은 믿음을 버려 파선한 자들이다. 하나님께 맡겨서 교훈을 받게 했다고 언급하는데, 이게 제일 무서운 형벌이에요. 하나님께 맡겼다 이게요. 우리 영적인 믿음의 삶 가운데 가장 무서운 벌이 뭐냐니까 '인간의 말로 안 돼, 인간의 힘으로 안 돼. 그러니까 하나님께 맡겼다.' 하나님께 맡긴 거예요, 근데 하나님은 직접 하셔야 되는 거거든. 이게 참 좋은 말이지만 진짜 무서운 말입니다. 여러분들 하나님께 맡겼다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보이는 주의 종 말씀 잘 듣고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최고 지름길입니다.
바울은 이 둘이 진리를 거스르고 교회를 해치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심지어 뭐라 했냐니까 "사탄에게 내어준 바 되었다" 사탄에게 내어줘 버렸어요. 이게요, 저주잖아 이거. 사단에게 내주면 안 되지요. 시험에 빠져도 주님의 손에 잡혀야 되지. 우리는 안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 하나님의 은혜에 잡혀 놓으면 사단의 속에 들어가 있어도 결국 살아남는데, 하나님의 은혜 놓쳐버리고 사단에게 내줘버렸다? 그럼 끝난 거 아닙니까? 그거는 세상에서 가장 큰 저주 아닙니까? 오죽하면 이런 말 했겠습니까, 바울이 말이죠. 그 사랑의 바울이 얼마나 분통이 터지고 화가 나고, 왜냐니까 복음으로 이렇게 키운 제자들을 남이 미혹시켜 가지고 복음 떠나게 했으니까 화나는 거 아닙니까? 얼마나 답답하면 그런 말 했겠습니까? 참, 이거는 정말 무서운 병이에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작은 죄를 절대로 가볍게 여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작은 죄가 그 사람을 딱 사로잡아 버리기 때문에 마음이 찔릴 때 즉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사는 길입니다. 죄를 숨기기보다 오히려 드러내고 은혜를 구해야 됩니다. "기도해 주세요. 도와주세요." 복음의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고 양심이 선하며 믿음이 진실해야 됩니다. 거짓이 아닌 진리 위에 든든히 서서 살아가야 되고, 정죄가 아닌 은혜로 살고, 교만이 아닌 감사로 살며, 형식이 아닌 기본 양심을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굳게 붙들라." 이 허망하고 배은망덕한 시대에 참 진리를 지키고 은혜에 감사하며 양심을 따라 사는 복음의 사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이 세상의 혼란스럽고 거짓된 가르침에서 오늘도 나를 지켜 주옵시기를 원합니다. 율법 앞에 겸손하고 은혜를 붙드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과 선한 양심으로 복음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저희들 되게 축복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옵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믿음의 양심을 지키는 복음의 사람 (딤전1:1-20)
20251102 주일오전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