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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성공자의 삶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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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공자의 삶이 무엇인가? 우리 성공할 수밖에 없는데 성공자의 삶, 당연한 거지만 하나님이 참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세상의 성공과 성경적 성공은 다르지요. 음. 세상의 성공, 성경적인 성공, 뭐가 다를까요? 세상은 높은 위치와 소유를 성공이라 말하지만 성경적인 참된 성공은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그 이유를 발견하고 그 흐름 속에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항상 결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입니다, 과정. 하나님이 그 과정 속에 있는 이런 부분 참 감사해야 되고. 에베소서 2장 10절에 보니까 에베소서 2장 10절 말씀에 거기에 보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거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다. 그 선한 일이 뭘까요? 그 선한 일이 바로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행하심은 항상 생명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생명. 그 생명은 내가 구원받았고 또 구원받을 사람이 쫙 깔려 있는데 그 한 사람 한 사람 건지는 이게 선한 거지요. 죽어가는 사람 있는데 관심이 없다, 그건 악한 거예요, 하나님 보실 때는.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는 나의 정체성을, 나의 정체성. 항상 이야기하지만 나의 정체성이 뭐냐니까 이 성공의 시작은 뭐냐니까 내가 도대체 누구며 왜 내가 여기 있는가, 왜 이런 환경 속에서 이런 만남을 갖고 있고 여기까지 왔나, 이게 이제 깨닫는 게 정체성이죠. 왜 이런 부모를 만났어?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왜 이런 목사님과 사모님 만나서 하나님이 저렇게 여기까지 왔을까? 이게 과연 내가 원해서 온 것은 아니거든요. 하나님이 어떤 환경을 통해서 인도하신 게 분명하잖아요. 이게 이제 정체성이 분명해야 됩니다. 다른 생각으로 하면 헷갈리거든요. 하나님은 그런 어리석은 분이 아닙니다. 실수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신데 내가 실수한 것까지도 유익하게 하시고 내가 선택한 것 같은데 그것까지도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그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기에 정체성이 분명해야 돼요. 거기서 나타나는 게 여기는 천명이 나오고, 그다음에 소명이 나오고, 여기서 사명이 나오는 거죠. 이게 정체성입니다. 천명이 뭐죠? 하나님이 이 시대와 현장을 향해 갖고 계신 절대적인 계획이 있는데 그게 하나님의 소원이거든요. 그 하나님의 소원하고 내 소원하고 딱 하나가 되면 그게 천명을 받은 사람이에요. 그 하나님이 소원이 있어요. 여러분을 향한 소원이 있다니까요. 여러분 하나님 사랑하지요? 하나님 믿죠?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지요, 예. 진정 사랑한다면 그 하나님의 소원이 있는데 그 소원이 바로 내 소원이 된다면 이게 딱 천명이 하나 되는 거죠.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보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소원이 뭐라고요? 디모데전서 2장 4절, 하나님의 소원이 뭐죠? 이해되죠? 하나님의 소원, 모든 사람이 너를 통해서 구원받기를 원한다 이거죠. 네 주위에 너를 통해서 구원받을 사람이, 복음 받을 사람이 쫙 있는데 그거를 지금 하나님은 소원하고 있어요. 그 마음을 이어받아야 돼요. 그 한 영혼에게 접근해 가지고 그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고, 그런데 그 사람은 평생 처음 듣는 복음이에요. 그러면서 하나님께 관심 없던 사람인 거죠. 하나님께 관심을 두고 하나님을 향해서 오도록 하는 이 길을 내주는 그 일을 하는 한 사람, 하나님의 소원과 하나가 되는 기쁨입니다. 소명, 그러면 이제 천명이 마음에 있으면 이제 소명이 나타나거든요. 하나님으로부터 그 소원을 딱 받으면 이제 콜링(Calling)이 일어나요, 소명이지요. 그게 뭐냐니까 그 천명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래서 나를 부르셨구나, 나를 선택했구나, 나를 부르셨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렵게 말을 했지만 복음 전하라는 거거든요. 생명의 복음, 이 복음을 선포할 때에 사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나는 최고 복받은 직이 뭐냐? 사실은 복음만 깨달으면 목사가 최고 복받은 거예요. 아 이렇게 소명 받으면요 구체적으로 이제 내 사명이 나오거든요. 사명이 구체화된 겁니다. 내가 구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될지 이 발견하는, 내가 할 일을 발견하는 거죠. 이 사명, 그것도 이제 행동이 움직여집니다. 사람이 제일 힘이 있을 때가 언제냐하면 내가 해야 되고 하고 싶어서 할 때 그게 가장 힘이 있어요. 가장 힘이 없을 때 어디냐? 어쩔 수 없이 따라갈 때 아무 힘이 없어요, 그거는 아무 영향이 없어요. 내가 하고 싶어 할 때보다 눈빛 보면요 막 빛이 나잖아요, 막 시간 가는 줄 모르잖아.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과 딱 소원과 하나가 되면 시너지 효과가 굉장한데,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 소원과 관계없을 때 그 결과는 이상하지요. 그래서 여러분들 소명자, 사명을 받는 사람 사도행전 20장 24절에 보면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선교사로 부름받았잖아요. 그런데 선교사니까 이런 고백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진짜 하나님의 사명 받은 사람은 다 이런 고백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내 생명을 쏟아붓는 한 현장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이게 나한테는 귀하다는 거죠. 우리가 현장에서 바로 이런 고백이 진짜 나오고 참 이런 목적으로 하나님이 나를 이 현장에 보내셨다, 이 사실을 믿고 이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면서 움직인다면 그 하나님은 직접 개입하시지요. 천명이 소명이 되고 소명이 사명이 될 때 비로소 인생의 방향이 확정되는 거죠. 이게 이제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그렇다면 이 현장을 보는 눈이 필요하거든요. 현장을 보는 눈은 좀 다릅니다. 우리의 수준에서 보는 그런 눈이 아니고 좀 이게 다른 눈입니다. 모든 문제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우리는 그런 안경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은 주무시는 분이 아니죠. 성령으로 우주에 쫙 이렇게 손길이 펼쳐지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그 천명, 소명, 사명 받은 그 한 사람에게 다 마음이 집중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그 개인이 말이죠, 어떤 눈을 가져야 됩니까? 문제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이 안경, 이 안경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나오는 게 우리가 말하는 당연성, 그리고 필연성, 또 하나가 절대성이 나옵니다. 문제가 올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을 보는 거죠, 영적 상태의 결과인데. 내 문제도 그렇고 상대방을 볼 때에 문제를 봤어요, 문제가 올 수밖에 없는 원인을 딱 보잖아요. 불신자 상태가 보이면서 '아 올 수밖에 없구나, 시간표가 됐구나, 이제 도와줄 시간표가 됐구나' 이것을 제대로 알고 이렇게 다 이렇게 도와주면요 얼마나 하나님 귀하게 역사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데 그럼 망하거든요.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손길이 있다니까요. 그 부르시는 손길이 문제 속에서 다 이렇게 사람들이 돌아오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그때 내가 딱 가 가지고 그 사람 조금만 도와주면 그렇게 마음 닫았던 사람도 다 그때 마음을 엽니다. 필연성. 이 사건이 내게 혹은 그 사람에게 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는 거지요, 하나님의 갱신 사인입니다. 그래서 고난당하는 것은 내게 유익이다. 고난 속에 가만히 보면 뭔가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어요. 고난이 왜 끊임없이 이어지는가, 그 메시지가 있어요.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하다고 하나님 말씀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면 절대성이 나오는데 이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절대적인 목표와 응답을 찾아내는 거죠.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면 우리는 응답받는 거지. 이제 언제 응답, 이제 응답이 남았죠. 이러면 바로 우리가 응답이 오는데 사건을 막 원망하는 것을 이제 바꿔버렸죠. 사건이 그냥 사건이 아니라 원망할 게 아니라 그 대신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획을 질문해 보는 거예요. '아, 여기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획이 있지 않을까?' 그게 바로 성공자의 눈입니다. 성공자들은 특징들이 퀘스천마크를 계속 던져봐요. 그런데 퀘스천마크를 내 입장으로 던져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으로 다 던져보는 거예요. 왜 하나님이 이런 사건을 허락하셨고 이런 문제를 허락하셨을까? '하나님 뜻이 있구나.' 그러면 그걸 발견하고 '야 이 속에 하나님의 응답이 있다' 그래 가지고 어 때로는 좋은 아이디어도 발견하고 때로는 새롭게 출발하기도 하고 때로는 뒤집기도 하고 때로는 끝까지 해야 될 이유를 찾고, 이런 식으로 응답을 받는 거지요. 아 이렇게 이제 성공을 하는 사람들은 이제는 현장 문이 열리면요 그때부터 이제 집중의 기적을 발휘하-, 집중의 실력을 그때 발휘해요. 여러 가지 퀘스천 던져보고 '하나님의 계획이다' 결론 나면 그때부터 뭐 합니까? 집중해야 되는 거예요, 집중. 내 삶에 뿌리가 내리게 하는 동력이 뭐냐? 그게 집중이에요. 사람이요 이 집중의 능력이 대단합니다, 예. 그래서 평상시 희미하다가도요 어느 날에 집중을 해야 할 이유를 깨닫고 딱 집중하면요 무서운 대인의 실력을 발휘합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막 돕는 그런 의미도 있지만 이미 하나님이 다 주셨는데 그때 실력을 발휘한다니까요. 그게 사람의 DNA 위력입니다. 사람은요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반대로 평범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요 특출한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평범한 일을 만났는데 그게 평범해지지 뭐 다른 게 있겠습니까. 특출한 사람은 특출한 상황 속에서 특출한 일을 만나요. 그런데 포기하는데 그 사람은 그걸 통해서 집중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끝내 해내거든요. 그게 특출한 사람이죠. 여기서 나온 단어가 일심, 전심, 지속. 자 일심이 뭐냐니까 오직 복음, 오직 언약에 마음을 모으는 단일성, 하나밖에 없어요. 우리 마음이 딱 하나로 일심이 다 되는 거죠. 베드로가 지금 재판관 앞에 섰잖아요. 공회의 재판관 앞에 섰는데 보통 재판관 앞에 서면 뭐 자기가 잘못이 없다고 변명하잖아요, 다 자기 지금 다 그렇잖아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그 말 듣고 예수 믿은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 장소에. 그런데도 그 자리에서 복음을 전한다니까요. 이게 이제 바로 일심을 가진 사람의 특징이에요. 일심이 아닌 사람은요 이유가 많아요.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변명 여러 가지 복잡해요. 그런데 일심을 가진 사람은 어떤 자리에서도 복음을 이야기할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자리에서 나는 복음을 이야기하리라.' 그 시기를 놓쳐버리면 더 이상 복음 못 전해요. 그러면 계속 그 시기를 놓치는 인생이 된다니까요. 한번 기회를 잡고 그 시기에 복음을 전하는 딱 맛을 보면요 그때부터 기회가 복음 전할 시간밖에 안 보이는 거예요. 한마디라도 있으면요 지혜롭게 딱 복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렇게 이제 인도받으면 영혼을 그때부터 붙이시는 거죠. 이게 일심입니다. 두 번째 전심이잖아요. 이 전심이라 해서 몰입을 말하거든요, 몰입. 집중의 의미보다 더 강한 의미가 몰입입니다. 내 모든 힘, 내 모든 정성을 쏟아붓는, 그래서 하나님께 집중하는 거죠. 어디에 몰입해야 됩니까? 그렇죠, 기도할 때에 몰입을 해야 돼요, 예. 기도가 희미하면요 그 자체가 뭐 흑암이 가득한 수준이거든요. 흑암이 가득하면요 몰입이 안 돼요, 분산되잖아요. 그런데요 진짜 하나님께 몰입하는 그 기도, 사단이 벌벌 떠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을 여러분들 잡아야 된다니까요. 근심 걱정 가득한데 무슨 하나님께 이 몰입이 됩니까? 안 되지. 예레미야 29장 보니까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왜 그냥 "찾으라" 하면 될 텐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합니까? "네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고 나를 만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자녀잖아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잖아요. 그러면 일상적으로 뭐 '하나님 아버지' 하면 될 텐데 육을 입은 인간 체질을 아시기 때문에 분산된 그 수준 가지고는 하나님 대답 안 한다니까요. 하나님을 향해서 몰입을, 집중하고 더 나아가서 몰입을 해야 하나님이 그때 응답하신다는 거예요. 이게 이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아주 중요한 말씀인데 인간 체질을 너무 잘 아시잖아요. 그리고 여러분의 상태를 너무 잘 아셔요. 분산된 상태에서는 흑암만 역사하지 하나님은 거기에 대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한 분이시잖아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우리가 온 마음을 모아서 집중하고 주님께 몰입하는 그 마음을 받으시고 대답하시는 거죠. 이게 기도의 원리입니다. 기도의 기본입니다. 어떨 때는요 10분 해도 몰입 안 될 때 있어요. 그렇다고 끝나면 안 되지. 때로는 30분 가야 돼요. 오늘 이상한 거 많이 느껴 가지고 혼란스러울 때는 때로는 한 시간이라도 계속 기도해야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되면 때로는 두 시간, 때로는 세 시간, 왜 합니까? 하나님께 몰입하는 데 이렇게 시간이 걸릴 수 있는 거예요. 사람은 그래요, 요즘 시대는 더합니다. 옛날에 발전하지 않았을 때는요 그냥 밤에 달만 떠 있고 별이 반짝거리는 그런 정서 속에서는 몰입이 잘 되잖아요, 그때 시기적으로. 지금은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를 분산시키는 정보와 모든 거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 산만한 가운데서 기도한다, 예 묵념도 그렇게는 안 합니다. 불신자들이 도를 닦을 때도 그들은 그 수준이 아니라니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요 어떻게 하나님께 집중하고 몰입을 해야지요. 그리고 지속이거든요. 응답과 상관없이 끝까지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리면서 계속 기다리는 거예요, 지속. 예,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에 보니까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게 믿음의 인내지요. 하나님 말씀 받고 그 말씀 가지고 지속한다, 그게 능력인데 참 그게 때로는 잘 안 돼요. 어 제가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의 흐름이 하루가 갈까, 이틀이 갈까, 3일이 갈까 그게 수준이거든요. 그 말씀을 일주일간 지속한다, 대단한 건데. 그래서 말씀을 또 들어보고 또 들으면서 또 확인하고. 제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를 또 듣습니다. 들으면서 '아 내가 참 믿음이 부족하구나.' 그래서 조금 더 반성하고 또 말씀 들으면서 '아 어떨 때는 야 어떻게 이번 주간에 이번 주에 이런 합당한 좋은 말씀 주셨을까?' 우리 성도들이 참 눈만 뜨면 여기서 분명히 모든 말씀 다 주셨는데, 결과 어떻습니까? 일심, 전심, 지속의 체질이 되면 성경은 말하기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영적 서밋이 된다 그랬거든요. 여러분들 서밋이잖아요. 히브리서 11장 38절에 말씀하기를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일심하고 전심하고 지속하는 사람 누가 막겠습니까? 못 막지요.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흔들릴 필요가 없어요. 지금은 스스로 무너지는 시대입니다. 그때는 환경이 어려웠는데 막 이렇게 나름 발버둥 쳤는데 지금은요 스스로 무너지는 시대입니다, 그게 가장 무서워요. 국가가요 가장 넘어질 때는 특징들이 외부 세력에 의해서 무너진 게 거의 대부분이 아니고 스스로 내부적으로 무너졌어요. 이게 사단의 올무입니다. 정신만 차리면 지금처럼 축복된 시대는 없는데 너무 축복받아서 스스로 무너지지요. 마지막으로 이제 집중되면 이제는 드디어 전문성의 실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니까 진짜 성공이, 이 사람은 성공자의 실력을 발휘합니다. 사람이 나의 삶과 직업이 연결될 때 나타나는 그 시너지 효과는 굉장한데, 이게 이제 하나님의 전문성에 그때 막 축복하시는 거죠. 성경 보십시오, 전부 다 축복받은 사람은요 전문성 여기에 하나님 복을 받았습니다. 자기 전문성이 없는 거기에 복 받은 사람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에게 주신 이 전문성, 축복의 통로고 그릇이기 때문에 여기에 하나님이 복을 쏟아붓는 준비를 하셨는데, 여러분이 그 그릇을 다 준비를 해야 되지 않습니까? 나의 직업은 단순히 생계 수단이 아니고 하나님의 천명을 전달하는 통로다. 예, 이게 이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천명이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을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힘이 굉장하지요. 사람의 눈치 보면서 일하는 사람은요 잘하는 것 같아도 아무 힘이 없어요. 그런데 사람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하면 그 전문성에는요 큰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그건 사람이 다 알죠, 그런 거. 여기서 나오는 축복이 이제 오직의 축복, 유일성의 축복, 재창조의 축복, 여기 다 나오는 거예요. 우리가 늘 말씀을 듣는 그 현장이요 여기서 다 기적이 벌어집니다. 오직의 축복,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나는 할 수 있다 이거예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나는 시작할 수 있다, 1단계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데 내가 홀로 서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확신을 갖고 든든히 서는 거예요. 그러니까 문제가 문제가 아닌 거예요. 스룹바벨에게 주신 말씀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이게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지. 그러면 이제 유일성의 축복이 일어나는데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나만의 특별한 달란트 있잖아요. 그게 이제 업무 현장에 경쟁자가 없어요. 경쟁할 이유가 없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달란트, 경쟁자 없이 승리하는 응답이지요. 상황이 그 사람은 그 사람에게 주신 독특한 능력과 힘으로 해낸다니까요. 지나고 보니까 하나님이 평생을 그렇게 인도하셨어요. 그 조금만 믿음으로 힘써버리면요 나만의 경쟁자가 없을 만큼 독특한 응답을 주시는 거죠. 이게 이제 유일성의 응답입니다. 바로가 요셉을 보면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요셉을 보면서 그 당시 학자, 박사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요셉 보면서 '이거는 일반 수준이 아니고 평범한 게 아니라 이거는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일이다.' 이게 이제 전문성이죠, 예. 유일성. 마지막으로 재창조. 나를 통해서 현장 문화가 바뀌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새로운 피조물, 날마다 새롭다니까요. 날마다 새로운 이 축복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합시다. 살아계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날마다 진정한 성공자는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과정 하나하나를 믿음으로 누리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우리 모든 멤버들이 이 축복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6년 04월 05일 [전도훈련] 성공자의 삶 강의 : 박한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