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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무엇을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하는가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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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하는가 (눅15:1-10) 오늘 말씀의 제목이 무엇을 즐거워하고 무엇을 기뻐해야 하는가? 에 그런 말씀입니다. 어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충만할 때에 거기에는 반드시 오직의 응답이 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늘나라가 임할 때에 거기에는 반드시 흑암이 결박되고 유일성의 응답이 옵니다. 그리고 주위가 복음화가 되어질 때에 재창조의 응답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의 흐름이고 사도행전의 흐름이고 축복입니다. 어 우리 교회는 바로 이 사도행전의 흐름 속에서 이런 축복이 어 이어짐을 믿습니다. 어 이렇게 되므로 믿음의 망대가 든든히 서게 되지요. 예. 이 믿음의 이제 여정이 이어지는데 믿음이 탄탄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충만하면 우리의 삶의 발걸음과 그 여정이 성령의 인도 100%, 성령의 역사 100%, 성령의 열매 100% 그래서 300%의 열매가 실제로 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보니까 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어 우리 안에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성령으로 임하셨잖아요. 그런데 그분은 인격이 있기 때문에 의지가 있거든요. 감정도 있고 그래서 기쁘신 뜻을 따라 행하십니다. 우리 안에서 그것도 소원을 두고 기쁘신 뜻을 따라 행하시는데 그 소원이 나의 소원이 되고 그 뜻이 나의 뜻이 되면 그 성령 충만이거든요. 보통 때는 다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내 주관대로 하잖아요. 그건 육이고 그런데 어 이 777 기도하면서 흐름을 따라가면요. 성령님이 내 안에서 그분이 기뻐하시는 게 내 기쁨이 되고 그분이 뭔가 의지가 있는데 그 뜻이 나의 뜻이 돼 가지고 그 뜻을 이루는 그런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바울의 고백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참 이런 축복이 있어야 돼요. 그게 진짜 제자입니다. 아,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먼저 이 두 가지를 회복해야 되겠는데 서론적으로 이 두 가지 회복이 뭐냐니까 바로 이 참된 교회가 회복돼야 돼요. 말씀이 교회를 통해서 이 계속 주님의 그 뜻과 의지가 계속 나와야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참된 사명이 회복돼야 돼요. 이 말씀을 받으면 회복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향하여 주시는 이 말씀을 회복해야 되는데 어 우리는 사람을 살릴 망대 여정 이정표를 세우는 여기에 일꾼이 돼야 되고 파수꾼이 돼야 될 교회입니다. 이게 예 교회가 그런 어 시스템이 갖춰져야 되죠. 하나씩 하나씩 그리고 이 여기에 대해서 아 내가 이런 부분에 이 일을 해야 되구나 그런 참된 사명도 어 회복이 됩니다. 마가다락방과 안디옥 교회가 축복받은 이유가 바로 이 흐름을 탔어요. 전도와 선교 흐름을 통해서 그 흐름에 아 내가 해야 할 일이 이거구나 스스로 이 찾아갔다는 거예요. 우리 교회는 앞으로 계속 뭐 별로 프로그램이 별로 없을 거예요. 그냥 이 교회가 계속 회복되고 여러분들이 사명이 회복되면 알아서 현장에 자기가 맡은 일 그리고 또 교회와 관계된 그 일을 자동으로 다 하게 됩니다. 성령 인도를 받는 게 그렇게 되는 거죠. 바울 팀들은요. 선교 나갔을 때에 현장에서 이 세 가지 뜰을 찾아냈어요. 그 세 가지 뜰, 그 세 가지 뜰 사람을 살리고 그리고 또 당연히 그 이방인들 복음화되고 그리고 회당에서 어린아이 후대들이 또 어 복음화되는 이 세 가지 뜰을 현장마다 회복을 했다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기쁨, 여러분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뭐 하나 있어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주님의 기쁨은 바로 하나님의 기쁨이고 바로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언제 가장 기뻐하시는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이 한마디로 말을 하면 딱 하나예요. 하나님이 예수님이 기뻐하는 거 딱 하나입니다. 그 하나가 뭐냐? 여기에 우리의 중심을 두고 기도하고 실천해야 됩니다. 그 하나가 죄인 하나가 회개할 때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할 때 주님은 기쁨이 너무 큽니다. 그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돼야 되겠습니다. 어 이것은 뭐냐? 잃은 양을 찾을 때 기쁨인데 예수님께서 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오는 이 현실을 두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요 수근거렸어요. 뭐라고 수근거리냐니까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이렇게 수근거렸습니다.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요. 자기 스스로 거룩한 사람이거든요. 거룩한 사람이다 보니까 이 경건을 유지를 해야 돼요. 그래서 성경이 말씀한 대로 이렇게 먹지 않아야 될 음식 안 먹고 만나지 않을 사람 철저히 안 만나고 선이 분명하고 해야 될 그 선이 분명하기 때문에 율법상으로는 아주 경건한 사람이잖아요. 그렇게 가르쳐왔고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이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와 차원이 달라요. 예수님은 차원이 다른데 예수님이 복음 증거하는 거기에는 세리와 죄인들이 늘 말씀을 들으러 오는데 그들을 환영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주셨는데 바리새인들은 전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아주 비판 비판을 했습니다. 뭐 비판할 때는요. 어떤 기준이 있어요.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거를 못 뛰어넘는 거예요. 그 율법에 잡혀 버리고 또 경건하다 그러면 경건에 잡혀 버리고 또 나의 의에 잡혀 버리고 이렇게 사람들은 좋은 일 하면서도 실수를 엄청 많이 합니다. 그래 예수님은 항상 율법의 완성자로서 그걸 뛰어넘잖아요. 뭘로 뛰어넘습니까? 사랑으로 긍휼하심으로 자비하심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또 말씀을 전하고 이게 이제 그리스도의 발걸음입니다. 아 잃은 양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100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다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주님의 기쁨이 뭐냐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자, 하나님의 기쁨은 뭐냐 하면 의인 아흔아홉을 함께 더불어 기뻐하셔요. 왜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잖아요. 의인들과 함께 같이 기뻐합니다. 주일날 예배드리잖아요. 함께 기도하잖아요. 의인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기뻐하는 게 우리의 기쁨이거든요. 그런데 이 기쁨보다 이 기쁨을 다 합친 것보다 더 큰 기쁨이 비교해 놨는데 그 큰 기쁨이 뭐냐?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이것이 더 기쁨이 크다는 거예요. 기쁨의 비중을 지금 이야기하는 거예요. 의인 아흔아홉을 외면하거나 무관심하는 것이 아니라 늘 의인 아흔아홉 때문에 하나님은 기쁨이 있습니다. 감사하잖아요. 영광 돌리고 찬양하고 얼마나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 건설하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이 기쁨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기쁨이 뭐냐니까 현장에서 죽어가는 한 영혼이 주님께 회개할 때 그 기쁨이 더 크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이런 배경 속에서 구원받잖아요. 누구든지 모든 사람은 이방인이었고 구원받을 수 없었고 죽었던 우리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 어느 날에 예수 믿어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쁨이고 주님의 기쁨이다 이거죠. 그 마음을 우리가 가져야 되는 거죠. 그 성령님을 모신 사람은 이상하게도 그런 마음이 생겨요. 현장을 향한 마음. 그리고 또 죄인이 회개하면 주님이 어떻게 기뻐하시는지 또 비유를 말씀하는 거예요. 열 드라크마 비유를 하셨습니다.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않느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기를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이게 뭡니까? 이 잃은 드라크마 하나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 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처녀, 약혼한 처녀에게는 이거 생명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약혼한 남자로부터 선물을 받았는데 다 열 드라크마를 주면서 이거 결혼하기까지 잘 보관해라. 우리나라 요즘 같으면 이 금반지를 끼워 주죠. 약혼 금반지를 끼워 주듯이 그렇게 열 개를 주면 예비 신랑을 사모하고 예비 신랑을 위해서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이거 잘 간직하거든요. 이것을 머리에 감기도 하고 때로는 목에 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나는 어 결혼할 사람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앞으로 결혼할 거다 이런 이제 의미로 다니는 그 처녀에게는 그런데 하나 잃어버렸어요. 큰일 날 일이거든요. 이거는 사랑의 파기와 같은 그런 엄청난 사건이에요.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이 처녀는 샅샅이 뒤지잖아요. 집을 다 뒤지고 내가 어디서 잊어버렸지 그러면서 내가 걸어왔던 그 여정을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샅샅이 뒤져요. 그래 가지고 찾았어. 그 기쁨이 얼마나 클까요? 그 기쁨을 이야기하면서 바로 예수님의 기쁨은 잃었던 탕자가 돌아오고 잃었던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고 전혀 예수 믿지 않을 사람인데 어느 사건을 통해서 이분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왔다 이거요. 그 기쁨이 너무 큽니다. 장로교회에서는요 좋은 교리인데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 현장을 향한 뜨거움과 열심을 싹 식게 만들었어요. 왜냐? 택했다, 아 택함받은 사람 언제나 예수 믿겠지 뭐 내가 안 해도 된다 이런 식으로 해서 자기 경건에 그런 걸 해서 현장 놓치고 전도 안 하고 그러면서 아주 이상한 그 바리새 길을 걸어가는 일이 굉장히 많거든요. 아 그래서 이런 부분을 완전히 깨버려야 돼요. 누구든지 이 복음을 받으면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 이게 이제 복음의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그랬잖아요. 어 하나님의 사랑인데 누구나 믿고 누구나 안 믿고 정했다면 그거 무슨 사랑입니까? 그 선택은요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는 거지 우리가 선택에 대해서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거예요. 우리는 죄인이잖아요. 누구든지 복음의 기회가 있기 때문에 이 복음을 받을 사람의 준비도 있기 때문에 이 복음을 전해야 된다. 그래야 우리 하나님의 그 간절한 소원이거든. 누구든지 이 복음 받으면 구원받게 일어났어요. 이 복음을 받아서 기쁨이 너무 큰 거예요. 그 마음을 그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성령받은 사람이 이 마음이 있어야 돼요. 이 열정이 식었다 그건 반드시 흑암에 잡혀 있는 상태입니다. 이거는 사단이 충만하면요 사람이 냉정해져요. 사랑이 없어요. 그 말 한마디에 아주 어 매마른 광야 같은 게 탁 풍겨져요.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면요 어떤 말을 해도 이게 상처를 안 받고 사람들이 다 온유하게 받아들이거든요. 그 하나님의 깊은 마음 속에는 현장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은 있습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사자들 앞에 천사들 앞에 막 자랑합니다. 어느 지역에 누가 아 복음 받았대, 하나님께 돌아왔어. 우리 기뻐하자. 그런데 그 중요한 일을 누가 했어? 그 중요한 일을 우리 아무개가 그 일을 했다 말이야. 얼마나 대견하지 않니? 야 기뻐하자. 그 뭐 하나님 기쁘니까요 이제 자기도 기쁜 거예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요 전도할 때 기뻐요. 그리고 전도할 때 내 말 안 듣고 교회 안 나와야 되는데 어우 교회 나왔어. 이거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몰라. 야 하나님이 역사하셨네. 그러면요 한 영혼을 보는 눈이 달라져요.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 복음 전하게 하셨고 저 영혼이 돌아왔으니 이거 하나님 역사야. 야 CVDIP가 그 단어잖아요. 언약이 들어 있죠, 그 이미지, 그 그림, 꿈 그 싹 포함돼 가지고 프랙티스라는 결과가 딱 나왔단 말이야. 말씀 보는 눈이 확 달라져요. 이게 살아 있는 신앙이라니까요. 현장에 아무 관심이 없고 그냥 앉아 가지고 예배드리고 이렇게 성경 나눈다 그러면 완전히 실패합니다. 그러고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고 주께로 완전히 돌아올 때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같은 맥락입니다만은 어 오늘 예수님 또 말씀합니다. 자꾸 비유로 말씀하면서요 참 이렇게 하나님 마음을 자꾸 이야기하잖아요. 이 바리새인들이 이해는 못 할 거야. 아마 시기하는 그런 중심인데 뭐 이해하겠어요? 그러나 제자들은 이해하거든요. 그 마음을 이해한 게 성령 받으면요 확 살아나잖아요. 예수님께로 들었던 그 모든 말씀이 성령 딱 받는 순간에 완전히 회복되는 거예요. 그래 평상시에 이 복음 말씀, 복음 훈련 말씀 잘 받아야 됩니다. 이 그러니까 복음 속에 있다는 건 중요하고요, 복음의 그 말씀 받는 게 중요하고 복음의 훈련 속에 들어가는 거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다가 어느 날 성령이 임하시면요 그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말씀이 확 살아나면서 현장과 직결되는 거. 그래서 어 사역자로 쓰임받는 거거든요. 둘째 아들은 아버지 곁을 떠나서 방탕하다가 완전 죽게 되었잖아요, 아버지한테 재산 받아 가지고. 그런데 받은 것도 어 잘 살면 되는데 아버지를 떠나는 그 마음이 무슨 바른 마음이겠습니까? 재산 중에서 분깃을 받아 가지고 재물을 모아 가지고 먼 나라 가가지고 허랑방탕하게 그 재산 싹 낭비 다 해버렸어요. 그때까지 뭐 정신을 못 차린 겁니다. 다 없앤 후에 그런데 정신을 못 차렸는데 마침 이상하게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서 비로소 궁핍해졌다. 이제 배고픈 단계에서 배를 채울 수 없는 상태까지 가버렸어요. 어 일 직장 하나 얻었는데 돼지 치는 직장입니다. 그것도 배를 못 채울 정도로 그러니까 이제 스스로 돌이키면서 회개하는 거죠. 뭐라고 회개합니까? 스스로 돌이키면서 아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도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죽네. 아버지께로 가야 되겠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아버지 가겠나? 아버지의 종이라 그러고 나는 기어 들어가야 되겠다. 그게 내가 사는 길이다. 이게 뭐냐니까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다 있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나는 살 수 있다라고 하는 거거든요. 그게 회개잖아요. 내가 실수했구나, 내가 실패했구나, 완전히 탕진했구나, 나는 완전히 안 되는 놈이구나.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여기에 사는 길이 있는데 하나님께 돌아가자, 주님께 돌아가자, 복음으로 돌아가자, 이게 회개거든요. 아 아버지는 참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요. 나간 이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아들이 간 그 길을 늘 쳐다보고 있습니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아들은 잊어버리고 방탕했지만 아들을 보낸 아버지는 언제나 언제나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그게 아버지 사랑이지요. 그런데 보니까요 아들이 보이는 거야. 누가 제일 먼저 봤겠어요?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가 가장 아들이 오는 모습을 다 본 거예요. 사람들 다 비슷해서 모르거든. 그런데 아버지는 아는 거예요. 눈에 딱 들어왔어요. 그래 가지고요 맨발로 달려갑니다. 아들이 안 달려왔어. 만나다 그러고 얼굴이 얼마나 바뀌었겠어요. 초췌하고 말이죠, 수척해지고 시커멓고 갈 때는 얼굴이 하셌는데 올 때는 막 얼굴이 바짝 말라 가지고 시커멓고 보통 사람 못 알아보는데 아버지는 알아본다니까요. 달려가서 망설이지도 않고 말이야 어 안고 입을 맞추고 부둥켜안으면서 울면서 말이 필요 없잖아요. 참 이거 보니까 제가 옛날에 고아원 생활했거든요. 6, 7, 8세 아 6, 7, 8, 9 3년 동안 참 시달림 말할 수 없어요. 그런데요 3년 지나서 어머니가 나를 찾아왔더라고. 그런데요 내가 보니까 딱 저 현관에 어머니가 왔어. 나는 늘 어머니 생각했거든. 엄마 그 별명이 엄마 생각이잖아. 거기서 달려간 거야. 엄마를 엄마 하고 부르며 달려갔는데 엄마는 다른 거 쳐다보고 있는 거야. 엄마 나야. 응, 그러면 다른 거 쳐다보고 있는 거야. 나라니까 하니까 딱 보더니 아니 네가 맞나 그러면 그때서 알아보고요 그때서 알아보고 우는 거. 내가 얼마나 바뀌었든지요. 사람이요 알아볼 모습이 전혀 없었다니까. 얼마나 시달렸으면요 사람이 그런 거예요. 이 방탕한 사람이요 얼마나 고생했든지 얼굴이 시커멓고 다른 사람 아무도 못 알아보는데 그러나 아버지는 알아봐요. 육신의 부모는 지 새끼도 못 알아본단 말이야. 하늘 아버지께서는 변함없이 우리를 아시고 탁 끌어안고 입 맞추고 그러면서 돌아와 얼마나 기쁘던지 종들 모아놓고 잔치하자 새 옷 입혀라 목욕시키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라 풍악을 울려라 이 마음을 종들이 알겠습니까 모르지, 하나님의 마음이거든요. 큰아들은요 돌아와서 이것 때문에 불평하는 거야. 나는 뭐 아무것도 안 해줬더만 돌아왔던 아들이 저기 아니 다 탕진하고 온 놈을 뭐 좋다고 저렇게 저렇게 잔치까지 베푸냐 말이야 불평하는 거. 그런데 아버지는요 그 아들에게 뭐라 합니까?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말이야, 마땅하지 않느냐? 큰아들 같은 사람들이 참 많아요. 그런 큰아들 같은 수준에 복음의 현장과 영혼에 관심이 없는 신자들이 참 많거든요. 구원받은 것은 어쨌든 기쁘고 감사한 건데 예 구원받은 것은 참 감사한데 이런 아버지 마음은 몰라 되겠습니까? 예. 여러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좀 눈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들 결론적으로 아버지의 말을 다시 한번 말씀드려 보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다,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게 마땅하리이다. 오늘 우리 성도들 세상을 바라보며 이런 마음과 중심을 가져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마음을 가진 성도인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자가 성령받은 마음이고 든든한 망대가 세워진 마음이고 사도행전의 길을 걸어간 자들의 여정이요 이정표인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 성령님의 그 마음을 담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우리 중심을 깊이 돌아볼 때에 우리가 어떤 가운데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우리와 같이 방황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 수두룩한데 우리 하나님은 그들이 복음 받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는 그 소원, 그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나님이여 기도하다가 이 하나님의 마음에 중심을 갖고 현장을 보고 현장을 살리는 믿음의 주역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옵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https://seoulsummit.mycafe24.com/index.php?id=213&cat=New+Praise&sub=&search= 20250817 주일오전예배 서밋선교교회 / 설교 박한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