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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자가 되라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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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자가 되라 (시1:1-6)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자가 되라", 에,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이 축복에 대해서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는 것을 복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사람, 이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황무지에 제멋대로 자란 나무는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작정하고 관심 있게 심은 나무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주인의 모든 관심과 돌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지극한 관심을 받는 자가 있는데 그 의인들이 누리는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자가 누구입니까? 그 특징들을 보면 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 보니까 어, 그들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영어 성경을 가만히 보면 딱 세 가지로 말합니다. Walk(걷는 부분), 그리고 Stand(서는 자리), 그리고 Sit(앉는 그 부분)을 두고 이야기합니다. 악인들의 그 카운슬링(Counseling, 꾀) 안에서 걷지 않는다. 그런 자가 복이 있다는 거예요. 악인들은 여러 가지로 우리를 유혹하고 꼬시고 미혹합니다. 그런 자리에 걸음을 걷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서는 데도 아무 데나 서는 게 아니에요.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한다. 이 말은 뭐냐니까 죄인들이 걸어가는 그 길에 서 있지 않는다고. 그리고 앉는 자리가 중요한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 인생을 말하잖아요. 인생은 그러합니다. 걸어가다가 자기가 관심이 가는 곳에 섭니다. 그러다가 더 많은 관심이 가면 그 자리에 앉아서 주저앉아서 그런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자는 그 인생길에 있어서 걷는 그 어, 노선이 중요하고 서 있는 그 자리가 중요한데 앉아 있는 그 자리가 모든 게 중요한데, 그런 악인의 에, 길에 서지 않고 악인의 그 자리에, 길에, 자리에 서지 않고 앉지도 않는다. 그런 의미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자는 어디에 마음이 쏠립니까?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자는 오직 두 가지에 집중하는데 그 두 가지를 오늘 말씀하기를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 너무 즐거워하니까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 여기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이 단어에 '엔조이(Enjoy)'를 쓰지 않고 '딜라이트(Delight)'란 단어를 썼습니다. 이 딜라이트는 뭐냐니까 그 내면적으로 기쁘니까 얼굴이 환하게 밝아오는, 그 많은 사람의 영향을 주고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그런 얼굴을 말합니다.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지키는 자는 이런 기쁨을 주시는 거예요. 가식이 아니라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그 환희, 기쁨. 주위를 환하게 밝혀 비출 수 있는 그런 은혜를 주신다는 거예요. 이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자는 이 말씀을 따르니까 그 말씀으로 인하여 생기가 아, 올라오니까 그 표정이 다르다는 거죠. 왜 이렇게 하나님의 관심을 어, 받는 이 말씀을 가까이할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말씀을 가까이하는데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가 성경에 말씀하고 있는데 시편에서 말씀합니다. 시편 기자는 말씀이 꿀보다 달고 금보다 더 귀하기 때문이다. 꿀보다 단 맛을 말하잖아요. 그 가치를 알고 그 맛을 알기 때문에 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119편 72절에 보니까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습니다." 천천 금은보다 아, 좋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뭐를 본 사람이지요. 그리고 그 내면적으로는 말씀을 먹고 소화해서 기쁨이 넘치는 그 내면적으로 말씀하는데 예레미야 15장 16절에 보니까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다." 그 기쁨을 말할 때도 딜라이트란 단어를 썼단 말이죠. 그러니까 이 내면적으로 기쁜 거예요. 말씀을 받은 사람은 그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그 평화와 기쁨이 있는 거예요. 이게 바로 행복 아닙니까, 여러분들? 이게 없어서 사람들은 갈등하는데 이 말씀 속에서 이 놀라운 내면 속으로 우러나오는 그 영혼으로부터 출발한 그 기쁨이 우러나오는 거예요. 말씀 속에 다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 말씀에는요, 묵상과 연결돼 있어요. 묵상, 집중.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생각하는 거예요. 하루 종일. 즐거워하는 마음, 그 감정 필연적으로 행동으로 나오잖아요. 너무 즐거워하면 그 즐거움이 행동으로 나옵니다. 마치 사랑하는 대상이 있으면요 온종일 생각하잖아요. 사랑하기 때문에. 시편 119편 97절에 보니까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립니다." 읊조린다는 '메디테이션(Meditation)'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배블링(Babbling)'이 아니고, 중얼중얼거리는 배블링이 아니라 묵상하는 거예요. 그 말씀을 읊조리면서 말씀을 되새기면서 마치 소가 아, 음식을 먹고 앉아서 되새김질하듯이요, 말씀을 되뇌이면서 되새[김질하는 겁니다]. 요즘은 너무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는 충격적인 것이 많다 보니까 그런 것이 되뇌이는 거지, 말씀에 집중 못 하기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세대에도 진짜 복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자는 그런 소리보다는 이 하나님 말씀 속에 들어가서 묵상하면 말씀이 계속 묵상이 돼요. 다 말씀이 그런 사람은 그에 대한 어떤 행동과 삶이 나오는 거지요. 어,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그럴 때 그 귀히 여겼다는 그 말이 '어 트레저(A treasure)'라는 다른 단어를 썼는데 이 트레저, 이게 이제 귀하다 이 말이 명사형이면 보배가 될 거예요. 그러니까요 보배를 귀히 여기듯이 귀히 여기고 소중히 여기는 거예요. 그 사람이 하나님의 관심을... 하나님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했기 때문에 이 말씀을 가까이하고 사모하는 사람에게 그때 관심이 가는, 근데 하나님의 그 속성상 말씀이 없으면 관심이 가지 않아요. 세상에 푹 빠져 버리면 다른 것이 들어가지. 신약 성경에서 보면요 바울은 또 이 딜라이트란 표현을 어디에 썼냐니까 이 속사람의 즐거움이란 단어를 썼는데, 사도 바울은 육신의 본성인 죄와 싸울 때 거듭난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로마서 7장 22절에 보니까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여러분들, 여러분 속사람 깊은 곳에 뭐를 향해서 추구하고 진짜 즐거워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혹시 만약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아 나를 위해서 주셨구나, 이 말씀은 내 말씀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즐거워한다면 그 딜라이트, 그 기쁨이 그 속에서 용솟음치게 될 것입니다. 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자는 도대체 어떤 복을 받는가? 결과지요, 결과. 이런 말씀을 받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꾸 사모하거든요. 그 성경에 약속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자는 어떤 축복을 받는가? 오늘 3절 상반절에 보니까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축복"을 받습니다. 철을 따라,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요 정확한 때를 주님은 아시거든요. 정확한 때를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 나무가 1년 내내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꽃이 필 때가 있고 열매 맺을 때가 있습니다. '철을 따라' 이 말은 뭐냐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계절을 주관하신다는 것이고 모든 시절을 주관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관심을 둔 그 인생은요 조급할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조차도 결코 헛되지 않고 가장 좋은 때에 가장 합당한 때에 가장 풍성한 결실을 보게 하신다. 이게 하나님의 축복이지요. 그리고 그 정도가 아니라 3절 중반절에 보면요,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축복"을 말씀했습니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하나님의 관심은요 끊임없는 이 생명의 공급입니다. 끊임없는 생명의 공급. 여러분들 팔레스타인 지역은 비가, 건기가 되면 모든 식물이 그냥 다 죽어갑니다. 하지만 유독 이 나무만 잎이 푸른 그 비결은 환경이 아니라 그 뿌리에 있거든요. 시냇가는 물이 마르지 않는 그 수로를 의미하는데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자는 세상이 어렵고 메말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끊임없이 그 수분,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기 때문에 영혼이 결코 시들지 않습니다. 그 내면에 생명력이 유지되는 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 볼 때에 평안을 느끼고 신뢰를 합니다. '나는 이렇게 메마른데 저 사람은 그 어 깊은 속에서 저렇게 왜 풍성할까.' 너무너무 부러워하고 주의 은혜를 나타내는 이것처럼 모든 일이 형통한 축복을 말씀했습니다. 얼마나 복입니까? 이 1월 달에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새해를 준비하면서 엄청 축복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 말은 뭐냐?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축복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말씀이 그렇게 나와 있지 않습니까?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한 축복"인데 그 말 보면요, 오늘 성경에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이 말은 장애물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목적을, 하나님의 그 목적을 반드시 이루게 하신다는 겁니다. 여기 형통은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고 그냥 비바람이 있어요. 비바람이 불어도 뿌리가 깊어서 넘어지지 않고 마침내 주인이 원하는 열매를 맺는다.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관심 갖고 주목하는 그 인생은 실패한 것 같으나 이렇습니다. 막힌 것 같으나 뚫리는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책임지시고 완성하여 가시기 때문이지요. 더 어, 축복, 오늘 제목 말씀대로 6절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 인정. 하나님 우리 인정하신다는 축복이 얼마나 큰지 몰라요. 여기 인정하신다 이 말은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신다는 겁니다. 단순한 지식이 아니고 마치 부모가 자식을 알고 깊은 관계에서 살피고 보살피는 것처럼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겁니다. 자, 가장 큰 복이지요. 아무도 사람들이 내 사정을 몰라줘도 하나님은 나의 길을 보시고 계시고 하나님이 나를 알고 계시고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 주신다. 이 축복이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의 관심이 있는 그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고 형통한다, 그런 축복입니다. 결론적으로, 그와 반면에 하나님의 관심을 거부하고 말씀 시냇물을 떠난 악인들은 어떻습니까?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뿌리도 없으니까 무게가 없잖아요. 세상 풍조 불면 그대로 이리저리 휩쓸려 버립니다. 사라지는 허무한 인생이지요. 그리고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 그랬습니다. 의인은 알곡인데 알곡이 모이는 곳에 쭉정이가 있을 수 없지요. 섞일 수 없잖아요. 그리고 결국 그 길은 나눕니다. 하나님의 시선과 보호가 없는 그 길의 끝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적어도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은 인생은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에 뿌리를 내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늘 지켜보시고 인정하시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어서 마르지 않는 샘물의 축복, 형통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믿음의 모든 성도들에게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함으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샘물의 축복과 형통의 열매를 맺는 인생이 될 수 있도록 주께서 축복하여 주옵소서. 순간순간 판단이 서지 않고 순간순간 헷갈릴 때마다 여호와를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옵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60111 주일오전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