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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하나님의 통치 - 축복을 누리는 단 하나의 비밀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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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통치 - 축복을 누리는 단 하나의 비밀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완벽합니다. 퍼펙트합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이야기할 때는 알아야 될 것이 있거든요. 모르는 가운데서 어떻게 완벽한 행동을 할 수 있고 완벽한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전지. 하나님은 정지하셔서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시죠. 하나님의 통치는 그냥 막연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향한 그 세밀한 관찰에서 하나님의 통치는 시작됩니다. 시편 139편에서 시편 기자는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라고, 그러니까 나를 완벽히 아시고 통치를 하시는 것이죠. 하나님의 전지하심이라 그럴 때 나를 볼 때 나를 어떻게 합니까? 살피시는 하나님입니다. 간섭하기 위해서 살피는 것이 아니고 나를 통치하심에 있어서 하나님은 나를 살피십니다. 시편 기자는 고백하기를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뿐만 아니라 우리의 그 깊은 동기와 마음까지도 훤히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막연하게 '하나님은 그런 분이다'라고 알기보다는 이 사실을 진짜 제대로 깨달아야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각 없이 생각하고 말할 때가 많거든요. 이게 영적 생활에 굉장히 방해가 됩니다. 이런 하나님의 세밀하신 사실을 우리가 진짜 믿을 때 우리의 마음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고, 언어가 바뀝니다. 시편 기자는 나를 살펴보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아신다고 합니다. 막연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세밀하게 살펴보셨기 때문에 잘 아신다는 그런 의미잖아요. 어느 정도냐 하면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내 모든 모습을 다 아십니다. 왜 일어섰는지, 왜 앉았는지 그것을 다 아시는 것이죠. 우리의 일상적이고 사소한 그 순간까지도 전부 다 하나님의 통찰 아래 있습니다. 참 이런 사실을 깨달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세심하게 속좁게 막 간섭하시는 분이 아니고 굉장히 폭넓은 하나님, 우리의 세심한 부분도 다 아시는 아주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의 생사화복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거예요. 우리가 죽고 살고, 잘되고 못되고, 복을 받고 안 받고 하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우리가 달라지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그러면서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의 수준을 아신다는 뜻입니다. 어느 정도 끌어당기면 따라올 수 있는지 그 수준을 아신다니까요. 그러니까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그 선에서 최선, 최고의 복을 지금 주고 계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으면 무슨 탓을 할 수가 없지요. '아, 좀 더 우리가 믿음으로 서야 되겠구나. 좀 더 그릇을 넓혀야 되겠구나. 좀 더 생각을 바꿔야 되겠구나.' 하고 우리가 자꾸 갱신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준비한 만큼 그냥 막 쏟아부으시는 하나님이시지, 결코 인색한 분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내가 말하기 전에 내 혀의 말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 숨길 것이 하나도 없잖아요. 다 드러나기 때문에 우리의 깊은 모든 것이 다 드러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런 통치를 받는다는 것은 축복 중에 최고의 복입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외면해 버리시는 것입니다. "나는 너를 모른다." 이러면 영원한 실패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끝까지 알고 통치하시는데,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무소부재. 우리가 교리적으로 잘 압니다만 시편 139편에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세밀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공간과 상황을 다 초월하시는 통치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어느 장소에 있든지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시지요. 어느 정도 함께하시는가 하면, 아예 하나님의 은혜로 둘러싸 버리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둘러싸 버립니다. 둘러싸시는 은혜. 아예 은혜로 둘러싸 버리십니다. 나의 앞뒤를 둘러싸고 내게 안수하셨다고 표현했습니다. 주님의 안수. 우리는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통치니까 그것은 사랑이죠, 사랑. 우리가 관심이 많으면 계속 주시를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늘 관심이 쏠리는 것과 같은 거죠. 내가 하늘에 올라가도, 스올(음부)에 자리를 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거기 계십니다. 고난의 깊은 골짜기조차도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다는 사실이지요. 자, 이런 사실을 알면 무엇을 깨닫습니까? 불신앙을 극복하게 됩니다. 극복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늘 '나 혼자 있다, 외롭다' 그렇게 되기 쉬운데 우리는 외롭지 않잖아요. 하나님이 이렇게 세밀하게 나를 붙드시는데 우리가 왜 외롭습니까? 우울증 앓을 필요 없어요. 나 혼자뿐이라고 생각할 때 외로운 것이지, 무소부재하신 주님이 내가 어디 있든 나를 세밀하게 통치해 주신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믿음으로 설 수가 있지요. 하나님이 마치 계시지 않는 것 같은 '부재의 느낌', 이것은 우리의 착각일 뿐입니다. 우리는 착각을 잘해요. 환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 순간도 우리를 절대로 놓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은 무엇일까요? 이 하나님의 세밀한 통치를 받는 삶 속에서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세 가지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 사실을 진짜 믿어버리면,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완전하고 퍼펙트하게 통치하신다는 이 사실을 진짜 믿어버리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뀌는가? 첫째, 사람이 참 조급한데, 이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을 끝까지 기다리는 '기다림의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형편을 아시고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믿어버리면 조급함이 사라져 버려요. 기다립니다. 어느 정도 기다리느냐? 믿고 기다리는 거죠. 불안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진짜 믿는 신뢰 가운데서 기다리면 편안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아시고,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시고, 하나님은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야.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셔. 나는 외롭지 않아.' 이렇게 되면 조급함이 사라지고 편안함 가운데 끝까지 기다리는 느긋함이 생깁니다. 내 시간표보다 하나님의 시간표가 완벽함을 신뢰할 때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 됩니다. 둘째, 언제나 틈타기 쉬운 불신앙이 '믿음의 담대함'으로 바뀝니다. 내 눈앞의 상황이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거기 계심을 믿을 때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담대함이 생깁니다. 8절에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셋째, 나의 시야가 바뀝니다. 좁은 시야가 아니라 '넓은 시야'로 바뀌게 됩니다. 마음이 좁아지면 불안해지고 시야가 굉장히 좁아집니다. 그런데 마음이 느긋하면 넓게 보면서 여유가 생깁니다. 과거의 습관대로 내 기준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며 다투고 불안해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거대한 통치 계획을 바라보게 되면 사소한 일에 목숨 걸고 다투거나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 하나님을 믿어야 되지요. 결론적으로 우리의 육의 습관이 반복되어서 체질이 되지 않습니까? 사람의 체질은 많은 반복적인 습관이 결국 체질이 되기 때문에 과거의 습관을 확 벗어버려야 됩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이론이 아니고 실제이기 때문에 나의 모든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해야 됩니다. 나 자신과 문제만 보면 좁은 시야가 되지만, 나를 둘러싸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딱 고정하면 그로부터 오는 여러 가지 힘과 믿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의 고질적인 육신적 습관들을 단절해야 됩니다. 비판하고 다투는 육신적인 습관을 하나님의 주권 앞에 싹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이제 사실적이며 절대적인 신뢰가 생기는 거죠. "나의 모든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 이 사실을 날마다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세 가지를 선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한다." "모든 육신적 습관은 이제부터 단절하고, 하나님의 주권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나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겠다." 이런 고백을 기도할 때 하신다면, 그 작은 고백이 나를 새롭게 이끄는 축복의 출발이 됩니다. 하나님의 완벽한 통치 앞에 믿음으로 서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시는 하나님, 주님께서 나를 살피시고 나를 완벽히 아심을 고백합니다. 내 안의 모든 불신앙과 조급함을 제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크신 통치를 온전히 바라보게 하옵소서. 나의 좁은 시야에 갇혀서 다투던 옛 습관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어디나 계시는 우리 주님의 평안 안에 완전히 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