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 아지트 상세보기

말씀 영적서밋의 자세와 임무 👁 0

영상
영상 보기
🔎 본문 읽기 설정
18px
영적서밋의 자세와 임무 (딤후 2:1-26) 녹취록 서밋이란 단어를 함부로 잘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왜 서밋선교교회라고 했을까? 이 서밋이라는 말은 정상이라는 뜻인데 우리가 산을 등산할 때에 최고 봉을 서밋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또 각 나라의 최고 대통령들이 모여서 회의하는 그것을 서밋 회의라고 이야기합니다. 서밋 G7 뭐 이렇게 정상회의죠. 우리 교회가 시작하면서 어떻게 이게 서밋선교교회라고 했을까 생각할 때에 육적인 서밋은 많지만 영적인 진정한 서밋이 희귀한 이때에 오늘 우리 교회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이 시대에 필요한 영적 서밋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여러분들이 현장에서 영적 서밋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저는 믿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이 서밋선교교회를 세워 주셨습니다. 우리 서밋에게는 이 디모데 전후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목사님만 서밋이 아니고 이렇게 우리 멤버들이 교회를 이 시대를 섬기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중요한 말씀인데 바울 사도가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영적 지도자로서 가져야 할 영적 서밋의 자세와 임무에 대해서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 서밋은 참 기본 자세가 중요합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기본은 중요하지만 이 영적 서밋에서 기본이 얼마나 중요하냐면은 기본이 탄탄해야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기본이요 허술하면 중요한 순간마다 자기가 무너져 버리기 때문에 아무 영향력이 없어요. 기본이 좀 탄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어 1절에 보니까 믿음에 든든히 쓰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표현은 좀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강해라는 말이죠. 그런데 일반 성경을 보면은 그냥 네가 힘내고 강해라 막 이렇게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그 뜻도 있고 자세히 보면요. 믿음에 든든히 쓰라는 의미예요. 믿음에 든든히 쓰라는 그 이유가 있는데 대부분 이렇게 번역했는데, 성경에 보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 강해져야 된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다른 번역 성경을 보니까 또 다르게 해 놨더라고요. 거기는 뭐냐니까 그리스도 예수님은 친절한 부르시니 그분께서 당신을 강하게 만드시게 해야 된다. 이렇게 해놨거든요. 주님이 우리를 도우시는 친절한 분이기 때문에 그분께서 여러분을 강하게 만드시게 해야 된다. 이런 의미는 뭐죠? 그분이 역사하려면, 주님이 우리에게 역사하려면 딱 통로가 있는데 우리는 믿음으로서야 되는 거예요. 믿음으로 딱 서 있으면 하나님이 붙들어 주세요. 힘을 주세요. 그분이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붙들어 줍니다. 그런데 불신앙으로 서 있으면 나만 힘들고 주님도 힘들어요. 도와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힘내라 그랬습니다. 그게 뭐냐니까 하나님이 너를 도우려 그러면 우리가 힘을 내고 딱 준비하고 있어야 하나님이 돕는다 이거죠. 그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힘빠지는 일이 많잖아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탁 서야 돼요. 세상 사람들은 다 무너져도 나만큼은 무너지지 않을 이유가 뭐냐니까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이요 이 시대의 영적인 서밋이기 때문에 나는 주님을 위해서 나는 든즌히 서야 한다. 이게 기본이거든요. 든든히 쓸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에 든든히 서는 것이야말로 영적 서밋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생각보다 들어가 보면요. 내가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잘 발견을 못하는 거 같아요. 어제 뭐 TV도 보면서 유명한 앵크 그분에 대해서 좀 이야기하더라고요. 들어보면서 자기 자신이 진정 자기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그리고 자기의 그 영적인 상태를 제대로 보고 관리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걸 잘 몰라요. 그런데 언제 실력이 나오느냐 하면은요. 어떤 중요한 순간이 되면요. 그 영적인 실력이 폭로가 되는 거예요. 만남도 그렇고 사건이 벌어진다니까요. 그것이 사실 나거든요 나의 내면 세계이거든요. 그 내면 세계를 인정하고 확인해야 되는데 그거를 제대로 잘 몰라요. 그 이야기를 하면 좋은 이야기는 좋아하는데 좀 자기와 안 맞고 조금 자존심과 관계된 이야기하면요 그게 안 받아들이여져 인정이 안 되니까 여기서 이제 문제가 오는 거예요. 그래서 옆에서 참 우리가 사역자들을 키울 때에 이런 부분을 잘 적절하게 이야기해 주고 설명해 주고 도와준다는 거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평생에 있어서. 승리하고 실패하고의 굉장히 중요한 기점입니다. 이 사실을 제대로 깨달아 버리면 사단이 딱 두려워합니다. 왜냐? 사단은 항상 우리가 못 느끼는 무의식 속에 허술한 틈을 늘 공략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관리 못하는데 어느날 눈이 열려 가지고 아 그 부분을 딱 관리하는 사람이 됐다. 이게 이제 믿음의 사람이거든요. 영적인 세계는요 육으로 이해할 수 없는게 굉장히 많습니다. 믿음으로 이 말은 시야가 달라요. 시각이 내 중심과 내 육의 그 차원을 뛰어넘어서 하나님의 입장에서 내 영혼을 딱 쳐다보는게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의 영혼을 딱 보면요. 내가 딱 보이거든요. 그걸 인정할 수밖에 없잖아요. 근데 뭐 그렇게 살아왔고 그런 수준으로 살아왔는데 인정해야지요. 그 인정할 때 믿음으로 단단히 쓰게 됩니다. 그게 하나님 역사하는 거예요. 그리고 또 이 기본 자세는요. 믿음의 든든히 쓰는 것이고 충성된 사람에게 전달하는 거 이게 기본입니다. 충성된 사람에게 전달한다는 건 뭐냐면 내가 믿음에 딱 서면요. 반드시 하나님이 내게 충성된 사람을 붙여요. 내가 희미하잖아요. 내가 복음이 안 쓰면 그런 사람이 붙을 수가 없습니다. 내 영적인 상태가 부실하면 항상 부실한 사람이 붙어요. 사건이 꼭 그렇습니다. 내 영적인 수준대로 되기 때문에 내가 믿음으로 딱 서면 반드시 하나님은 충성된 사람을 붙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내준 이 충성된 사람에게 반드시 이 복음을 전달하라. 이게 이제 기분이거든. 그런데 이 복음 전달은요 말로만 다 되는게 아니에요. 예를 들면 가정이 있으면 자녀들은 부모 영적인 상태가 그대로 흘러갑니다. 이게 전달이거든요. 부모의 영적 상태는 숨길 수 없어요. 말로 율법으로 이래라 저래라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 자녀는 부모의 그 영적인 허름을 그대로 이어 받습니다. 그러니까 지혜로운 부모는 나와 자신을 다 돌보고 이 복음으로 제대로 서는 거예요. 영적 싸움을 합니다. 지혜로운 부모는요. 영적 싸움을 잘해요. 미련난 부모는 육적인 싸움을 잘하지요. 그게 차이점입니다. 그래서 충성된 사람에게 전수하라. 이 배운 복음을. 그러면 그 충성된 사람은 특징이 또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미련한 사람은요 그거게 없어요. 그러나 충성된 사람은 말씀 받고 이 말씀 받은 사람을 반드시 그 다른 중성된 사람에게 또 전달하게 되 있습니다. 이게 세계 복음화가 되어가는 거기 때문에 생각을 잘해야 되겠지요. 근데 이 기본 중에 기본이고, 또 중요한게 뭐냐니까 고난을 받아라. 이 얘기는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사랑하는 자녀한테 또 사랑하는 제자한테 야 너 고난 받아라. 그 말이 쉬운게 아닙니다. 어쩌든지 고난 없이 편안하게 잘되고 그렇게 하기를 바라고 원하는데 어떻게 고난을 받으라고 이야기합니까? 그 말을 못 하지요. 근데 바울은요 사랑하는 믿음 디모데에게 고난을 받으라고 이야기해요. 디모데후서 2장에 보면요. 고난이란 단어가 두 번 나오고 고난과 관계된 참으라 이 단어가 세 번 나오면서 고난에 대한 의미를 담은 단어가 다섯 번 나온단 말입니다. 다섯 번. 고난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고난을 받는 특징이 뭐죠? 참는 거 아닙니까? 잘 참아야 돼요. 잘 참는 사람이 위대한 인물 아닙니까? 참지 못하고 그대로 성질이 나오고 행동이 나오면요. 그건 진짜 못난 사람이지요. 사고가 거기서 다 나잖아요. 넘기면 되는데 못 넘기는 거예요. 그게 이제 얕은 사람이거든요. 훌륭한 지도자일수록 진짜 영적인 서밋일수록요. 뭐가 다른가 하면 잘 참아요. 잘 넘겨요. 그 순간마다 순간마다 잘 넘기더라니까. 넘기면 되는데 못 넘겨 가지고 자꾸 사고가 터지는게 참 많잖아요. 그래서 진짜 바른 지도자는 특정이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고난 속에서 참는다는 거예요. 참으면 하나님 해결해 주시고 주위에서 다 해결돼 버립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영적 서밋에 참 못 참을 일이 참 많거든요. 실제로 보면은 봐도 그렇고 모든 상황에 여러 가지 기본에서 벗어난 일이 너무 많아요. 사회가 그 혼란스러운데 어떻게 합니까? 참아야죠. 참는게 위대한 거고 그게 수준입니다. 앞으로 새로운 한해 여러분들 이제 참는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조금 더 참고 참으면 내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기적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습니다. 최소한도로 원래에 발판 삼아 가지고 내년에는 더 하나님의 큰 역사 있을 것이다. 더 큰 축복이 있을 것이다. 분명합니다. 왜냐? 참은 대가로 내년에 또 하나님이 배상 보상을 많이 위로해 주실 걸로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 얼굴 보니까 이 보상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다 돼 있어요. 축복 누리기 바랍니다. 군사로 비유했습니다. 군인들의 특징이요. 힘들잖아요. 훈련이 참 많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전쟁이 터지면 훈련 많이 받은 사람들이 결국 많은 일을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왜 참습니까? 참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잖아요. 어느 순간에 인내가 필요하는 중요한 일을 하게 된다 이 말이에요. 그때 실력을 발휘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못 한다 그러는데 이 사람 하는 거예요. 다 성취합니다. 그게 바로 훈련받은 사람이 끝을 내는 거죠. 중요할 때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쓰임받을 줄 믿습니다. 고난, 참 고난이 아름다운 겁니다. 여러분들 세상 노래도 많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고난은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고난 속에 담겨진 그 보화를 찾아야 됩니다. 사업을 하든지 장사를 하든지 뭘 하든지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 되는게 있습니까? 하나도 없어요. 그 어떤 사람은요 축복을 받을 만하면 고난 때문에 자꾸 이렇게 변덕이 생기는데 그거는 진짜 안 좋은 버릇이에요. 꾸준하게 해야 되요. 고난을 참고, 미련하게, 그런데 그 사람이 결국 성공하고 축복을 받습니다. 말씀 따라 사역하라. 중요한게 말씀 따라 사역하라. 이게요 나름대로 사람들은 길이 있더라고요. 막 나름대로 방법이 있고 나름대로 수단이 있고 있는데 영적 서밋은요 절대로 그러면 안 돼요. 내 수준으로 가면 안 되고 말씀 따라가야 돼요. 마침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가잖아요. 마라톤 선수가 정해진 그 길을 땀을 흘리면서 노선을 따라 차근차근가게 갈 때 그게 결국 골인점에 도달하고 성공하게 된다 이 말이죠. 그래서 말씀 따라간다. 사실은요. 나를 버리는 거예요. 내 수준 아니고 수단이 아니라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간다는 것은 영적인 수준이 엄청 높은 겁니다. 대부분 내 수준대로 한다니까요. 아무리 은혜 받아도 내가 원하는 그것만 그 길로 하려고 그래요. 그게 내 수준인데 대부분. 그런데요. 어느 순간에 살아보니까 아무 의미가 없어요. 나는 그래서 말씀대로 가는 거야. 따라가는게 그 사람이요. 대단히 서밋 중에 서밋이고 축복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고 똑똑한 사람입니다. 똑같이 일을 하는데 주위에서 아무도 몰라. 그런데 그 내면을 보면 그 사람은 말씀 따라 일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게 막 축복하시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헌신적으로 수고해라. 헌신을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요. 헌신을 원하셔요. 수고. 하나님 그걸 잊지 않습니다. 참물 한그릇, 이렇게 대접하는 거 그거 하나님이 잊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수고를 아신다는 거야.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다. 왜 수고합니까? 열매가 있으니까. 열매를 하나님이 주시잖아요. 대가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천국에서만 대가가 아니라 이 땅 위에서도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가를 주시고 위로하시고 열매를 주시는 거죠. 그리고 영적 지도자는 당연한게 뭐냐 복음에 대한 확신이에요. 예수 그리스도. 자, 이 복음에 대한 확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 복음에 대한 확신은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요. 내 마음속에 진짜 어떤 스피릿을 받으면 진정한 그분을 딱 마음에 모시면 이 복음의 힘을 얻어서 복음을 전할 수가 있는 거죠. 바울은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갔으니까 복음 때문에 사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 고난을 기뻐한다 그랬거든요. 그러면 복음에 대한 확신이 넘치는 거 아닙니까? 예. 순교까지 했잖아요. 그럼 생명 건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 복음에 대한 확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표현이에요. 예수님을 진정 사랑하잖아요. 그러면 진짜 사랑하면 말로 아니고 이 행동이 나옵니다. 그게 헌신입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서 희생을 하신 것은 내가 천분의 만분의 일도 안 되는데 내게 건강 주셔서 시간 주셔서 내가 이런 기회를 주셔서 주님을 헌신하게 되구나 너무 감사하다. 주님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 나는 주님을 진정 사랑합니다. 그러면서 이제 고백할 때 진정한 것이 되는 거예요. 마지막 하나가 깨끗한 그릇 하나님 쓰십니다. 그릇 종류가 많잖아요. 우리는 다 제각기 특징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그런데 많은 특징을 쓰시는 하나님의 공통점이 뭐냐니까 깨끗한 그릇을 쓰신다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 날마다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야 돼요. 순간마다 다른 사람은 그냥 지나가요. 남탓이에요. 내탓은 아니야. 그런데 구원받은 청결한 양심 가진 사람은 전부 다 나를 돌아보고 내가 갱신하고 말이죠. 참 이렇게 귀한 마음이지요. 그래서 이 깨끗한 그릇은 그냥 깨끗하다. 그래 가지고 되는게 아닙니다. 깨끗한 그릇은 특징이 있더라요. 그게 뭐냐? 거짓 교훈과는 싸워요. 그게 깨끗한 사람입니다. 거짓되었는데도 못 본척하는 사람 그거는 오염된 마음이에요. 분명히 거짓이 판을 치는데 내가 못 본척 하고 있다. 그거는 깨끗한 그릇이 아니에요. 깨끗한 그릇은요. 딱 거짓과 불의 앞에 뭔가 행동이 나온다니까요. 예를들면, 다윗이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참 중심이 있잖아요. 양을 칠 때 양을 보호하는 면이 나타나고 그리고 또 골리앗 장군이 나타나 가지고 말이죠. 하나님을 욕할 때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거예요. 아니 사시는 만군의 여호와 이름을 욕하다니 그래 가지고요. 힘이 났다니까요. 그러잖아요. 성령께서 막 그 마음의 속에 힘을 주시는 거야. 그래 가지고 평상시 준비한 물맷돌로 때려잡았잖아요. 그게 바로 깨끗한 양심이고 바른 믿음이에요. 깨끗한 그릇 하나님 쓰십니다. 이 시대가 아무리 불의스럽다 하더라도요. 중요한 순간에 불의가 나타나지 않아야 되는데 불의가 힘을 발휘 한다. 그때는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죠. 그때는 탁 제대로 나와야 됩니다. 틀린 건 틀린 거고 아닌 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이 시대에 살아가는 진리의 사람이고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됩니다. 여러분 속에 혹시 자신을 너무 정당화해 가지고 아니면 너무 자신을 가려 가지고 이런 거짓된 것에 오염되어 있다면 십자가 앞에서 내려놓고 이거 다 버려야 돼요. 그래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해야 됩니다. 깨끗한 그릇이 있을 때에 하나님 아시고 그 사람을 쓰시잖아요. 깨끗한 그런 말씀하면서 강조하는게 뭐냐니까 지도자에게 이 말을 조심해라는 걸 말씀해요. 분쟁에 끌려가지 말고 말에 끌려가지 말고 논쟁 하지 말고 거짓 속지 마라. 요 요 말이 참 중요한 거 같아요. 말이 중요하니까 그 사람의 생각의 결론이요 혀를 통해서 말을 하거든요. 더러운 사람은요. 자기 자기도 더러운 말이 나와요. 거짓인 사람은 거짓이 나가요. 말 속에 휘말리지 말고 자기를 지키라는 거 아닙니까. 절대로 휘말리지 마라. 말에 휘말리지 마라. 딱 지도하는 가운데서 자신을 깨끗해라.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부리고 다투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온유하게 가르치고 참아라.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 깨끗한 그릇으로 쓰임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